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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청진 1박2일 여행비용은 15만 원

기사승인 2019.07.15  19: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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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현 부천시의원의 부천민주평통, 북간도 항일독립운동 연수기- ②

[정재현(부천시의회행정복지위원장]

   
▲ 윤동주 기념관에서 필자 정재현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의 한 여행사는 간판을 내놓고 길거리 시민들에게 북한여행을 제안한다. 북한 청진으로 1박2일이다. 말도 안되는 중국어 수준으로 해석해도 여행경비는 880위안(15만 원 수준)이다. 국경을 넘어 북한 청진에서 하루를 재워주고, 해산물을 제공하고, 각종 공연을 보여주는 조건이었다.

현지가이드 김 씨는 "중국인의 경우 지금 바로 북한으로 자전거, 자가용, 기차 여행이 자유롭게 가능한 상태이다. 지금 중국은 북한의 완전한 개방을 손꼽아 기다리며 기반시설을 준비 완료했다."고 밝혔다. 북한 개방 특수의 기본 자락을 깔아둔 셈이다.

   
▲ 북한 청진 1박2일 관광이 중국돈 880元 이라고 적힌 배너 ⓒ정재현

전무후무한 북간도 항일 독립 운동 연수
준비와 일정, 내용으로 치면 전무후무한 연수이다. 현지를 가장 잘아는, 그것도 여기가 고향인 독립운동가의 후손과 역사에 밝고 애국심이 강한 조선족 현지 가이드, 그리고 이 곳을 연구하다 퇴직한 저명한 역사학자를 동시에 모신 부천 민주평통의 <북간도 항일 독립 운동 연수>다.

교수형 보다 배고픔
배고픔이 교수형을 이겼다. 조선시대 후기인 1800년대 말, 함경도에 큰 기근이 찾아왔다. 국경을 넘으면 교수형에 처해지던 시절이었다. 굶어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국경을 넘었다. 이렇게 간도에 도착한 조선족은 마을을 세우고 수리작업을 통해 논농사를 지었다. 간도의 논농사는 이렇게 도입되고 안착했다.

'동쪽(조선)을 밝히겠다'는 의미의 명동촌은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녔다. 북간도의 명동촌은 유행의 중심이 아니었다. 기독교 등이 깊이 결합된 독립운동의 핵심이었다. 시인 윤동주가 어릴 적 뛰놀던,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가 꽃미남으로 자랐던, 참 언론인 장준하가 기개를 피우던 곳, 명동촌을 부천 민주평통이 찾았다. 앞서 밝힌 간도의 모세, 간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김약연 목사 등 5가구가 일군 기적이었다.

   
▲ 윤동주 시인이 감금 당해서 박해를 받던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재현 ⓒ정재현

이곳이 바로 명동촌의 명동학교다. 중국의 다른 관광지에 비하면 너무 정비가 잘 돼 있다. 시인 윤동주 모형과 책상에 앉아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그럴싸한 체험형 기념관도 있다.

   
▲ 명동학교에 세워진 김약연(1868~1942) 선생의 흉상 ⓒ정재현

중국 정부가 최근에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 고마운 일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내 결론은 이랬다. '항일무장투쟁의 근원, 명동촌, 만주에서 최초의 쌀농사? 잘난 척하고 웃기지 마라.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중국에 속한 56개 소수민족 중에 하나인 조선족이야기라는 느낌이다.' 동북공정의 속셈이 느껴진다.

한국 기독교의 초기 선교는 나름 구역이 있었다. 캐나다 선교부의 선교지였던 함경도 조선인의 간도 이전과 동시에 신앙의 터전도 옮겨졌다. 보수적인 기독교 전통 보다는 약간의 진보적 성격을 띠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뿌리가 됐다. 여기에 명동촌과 룡정시의 독립 투쟁정신이 그대로 이어진 것.

연변조선족자치주는 한국 여행자 입장에선 매우 편안한 곳이다. 일단 간판이 한글 우선이다.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한글을 반드시 간판의 위쪽이나 세로쓰기 경우 오른쪽에 우선해서 쓰고, 다음 중국어를 쓴다.

   
▲ 연변조선족자치주 한글간판 ⓒ정재현

연변조선족자치주는 200만 명의 전체 인구 중에 80만 명이 조선족이다. 덕분에 식당 마다 김치가 있다. 한국 보다 맛있다는 냉면집도 많다. 슴슴해서 어색한 평양냉면도 아니고, 아주 질기고 쫄깃해서 자르기 힘든 함흥냉면도 아니었다. 양념이 가득하고 매콤하면서, 새콤한 냉면이다.

시인 윤동주는 가슴이 여린 사람이었다. 정지용을 사모했던 윤동주의 열정은 대학을 옮길 정도였다. 1945년 전쟁 막바지에 윤동주의 아버지는 일본까지 찾아가 윤동주의 시신을 들고 동해를 건넜다. 그리고 손수 묘비까지 만들어 묻었다. 아들의 묘비에 시인 윤동주라고 썼다. 아들을 자기 손으로 매장하는 심정이라니.

시인 윤동주의 묘지는 지금도 처연하다. 지금은 풀이 무성하고, 길이 험해 들어가기 힘들었다. 생가는 과하리만치 기념하는 상태지만 묘지는 정 반대의 처지였다. 많이 아쉬웠다.

   
▲ 문익환 목사와 시인 윤동주 ⓒ정재현

해란강가에 아파트가.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로 시작하는 가곡 <선구자>의 원래 제목은 <용정의 노래>였다. 용정 일대에서 유일하게 이 곳에만 소나무가 자란다. 일제가 죽이기도 했다. 8번 죽었고, 9번째 나무가 자란다.

결론적으로 현재 일송정 소나무는 자주 죽어서 몇 번을 새로 심었고, 그 시간 동안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가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연길시를 가로지르는 해란강은 도문시에서 두만강에 합쳐진다.

교포(조선족)이며 현지 가이드 김 씨는 어려서 <선구자> 노래를 몰랐었다고 한다. 친일파가 작사 작곡한 노래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을까? 아니다. 우리와 달리 배운 적이 없었다. 작사가 윤해영도, 작곡가 조두남도 모두 친일 행보가 밝혀졌다. 친일 행적이 논란이었다고는 하지만 룡정이 조선족에게 제2의 고향이었다면 일송정과 해란강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 용정 3.13 반일의사릉 ⓒ정재현

15만 원 탈취사건
15만 원 탈취사건은 첫 무장투쟁이었다. 1919년 3월 13일, 한반도보다 12일 늦게 일어난 만세 사건은 복수와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윤준희 등 6명은 철혈광복단을 구성하고, 군자금을 모으던 중에 일제가 현금 30만 원을 수송한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1920년 1월 4일 용정 동량어구에서 마차 2대를 급습해 한 대는 놓쳤지만, 현금 15만 원은 탈취했다. 무기를 사러갔던 그들은 밀정의 신고로 일부는 잡혀서 처형됐고 일부는 도망쳤다. 돈도 빼았겼다.

당시 장총 1개 값이 10원이었다니 1개 사단 규모는 무장이 가능했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15만 원(220억 원 가량) 탈취사건이 마지막까지 성공해 무기를 구입해서 간도로 돌아왔다면 또다른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었을 것이다.

   
▲ 1920년 길림성 용정시 지신향 하승지촌/1920년 간도 15만원 탈취사건을 기념하기위해 건립한 기념비ⓒ정재현

3만 명의 룡정시위
3.1운동이 간도에 알려진 것은 3월 7일이었다. 이보다 앞서 1919년 2월에 배포된 간도의 한국독립포고문은 과격했다. 제목부터 '선언문이 아니라 포고문'이었다. 무장독립투쟁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국내의 독립선언문이 청원이었다면 용정의 포고문은 '독립을 보장하지 않으면 어떤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문이었다.

많게는 3만 명(일제는 7천 명)이 시위에 나섰고 19명이 사망했고, 3.13 열사릉에 안장됐다. 부천민주평통은 현장을 직접 방문해 참배했다.

김일성도 만났다.
아주 공식적인 장소에서 아주 공식적으로 김일성을 만났다. 연변박물관 3층 전시실에서다. 공식적인 이름은 1928년부터 1936년까지의 연변당 조직 상황표. 김일성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변도서관의 전시실 기록에 연변당의 한 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기록돼 있다.

이번 <북간도 항일 독립 운동 연수>에는 이명화 박사(독립기념관 전 연구위원), 규암 김약연의 증손자인 김재홍 규암 김약연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동행했다. 또한 현지 가이드 김만성 씨도 연수를 도왔다. 참고로 이번 연수기는 3명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성했음을 밝힌다.

   
▲ 규암 김약연 선생 묘역 ⓒ정재현

참고로 규암 김약연(1868!1942)은 조선 말에 함경도에서 142명을 이끌고, 만주 명동촌으로 이사와 벼농사를 짓고 독립운동의 근간을 마련한 기독교회의 목사이다. 그래서 규암 김약연은 '간도의 대통령' 혹은 '간도의 모세'라 불렸다.

나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천시협의회(회장 정인조, 이하 부천민주평통) 위원 26명과 함께 '민주평통다운 연수'에 참가 중이다.

부천 민주평통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북간도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배운다.

또한 백두산과 두만강 국경지대 일대를 돌아보며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행진을 함께 한다. 일정은 16일까지 4박 5일 동안이다.

우리는 3일차까지 북한과 간도 지역의 국경을 오갔다. 아주 지겨울법한 차 안에서는 더 지겨울법한(?) 역사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곧 영화로 개봉될 <북간도의 십자가>의 마지막 대사이다.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역사는 기록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돼야 한다. 역사는 죽은 자의 기록이 아니라 산자의 기억이어야한다."

   
▲ 정인조 민주평통부천협의회장이 규암 김약연 선생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정재현

이번 연수에는 민주평통 부천시협의회 정인조 회장을 비롯해 정재현 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 홍진아 부천시의원, 권유경 부천시의원, 민주당 오정지역위 여성위원회 강영옥 부위원장, 경기도교통연수원 권혜정 강사, 인흥건설 김인란 대표, 손지희 수기테라피 손순남 원장, ㈜햇빛나눔 송봉철 대표이사(바르게 부천시협의회장), 전 바르게 부천시협의회 양경미 회장, 부천오정녹색연합회 원영아 명예회장, 서울교통공사관리소 이보철 소장, ㈜민창개발 이상원 대표, ㈜리츠개발 이수일 대표이사, 대한교육연구소 이용부 소장, 프리랜서 이정민 강사, 미들하우스출판사 이희선 대표, 유일섬유 임경하 대표, 심곡복지관 정병권 문해교사, 부천시체육회 정윤종 수석부회장, 전)오정농협 정주오 약대지점장, ㈜한양그린파크 조우형 대표이사(새마을회장), 자영업 최세자 대표, 수레와 달구지 최승삼 대표 등 26명이 동행했다.

   
▲ 민주평통부천 정인조 협의회장을 비롯한 연수단원들이 장춘공항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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