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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㉒] '선풍기'...태어날 때부터 약했던 그녀

기사승인 2019.08.12  19: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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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뼈에 온통 바람길을 만들어야 했던 어머니"

   
▲ ⓒ부천타임즈

선풍기
채원


태어날 때부터 약했던 그녀
늘 차렷 자세로 일해야 했던 탓에
뼈와 관절에 무리가 많았고
자주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찜통더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일했던 목뼈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 들어 먼 산을 보며 잠시 쉬어갈 뿐
몸이 쇳소리에 끌려다니고
가슴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더울 때마다 바람을 먹여서 키웠다

사방을 누볐던 목이 한쪽으로 쳐질 때까지
고집스레 놓지 않았던 얼굴에
해바라기 씨가 빼곡히 익었다
쭈글쭈글한 이마에
바람이 지나간 길이 보인다

핀을 박아 고정한 목
아들의 꽁무니만 좇느라 몸을 자꾸 들썩거린다
평생 자식만 바라보다 앓아누우신
어머니 몸에서 바람 소리가 난다

   
▲ ⓒ부천타임즈

여름엔 에어컨이 참 좋다. 몸은 물론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장마나 태풍으로 인해 날이 습할 때도 아주 좋다. 습기를 제거해 뽀송뽀송한 살결을 느끼다 보면 마음까지 쾌적해진다.에어컨이 있어도 집마다 선풍기가 있고, 방마다 쓰기 위해 몇 대씩 있는 경우도 많다. 에어컨에 비해 선풍기는 매우 저렴하고, 이동성도 편리하며, 에어컨의 보조 도구로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지는 선풍기를 쉽게 볼 수 있다. 목을 돌리고 꺾으면서 사용하기 때문에 경추 손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그럴까. 채원 시인은 이런 선풍기에 힘들었던 시대의 여성성을 부여하고 어머니로 구체화한다. 어머니들은 머리에 크고 작은 물건은 물론 논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새참까지 이고 날랐다. 전통적으로 입식이 아닌 좌식 생활구조여서 집안이든 부엌이든 빨래터든 관절을 접고 구부려야만 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해야만 하는 환경이어서 "뼈와 관절"의 혹사는 불을 보듯 뻔했다.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서 손으로 뒷목을 주무르거나 고개를 돌리면서 자주 풀어주어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일했던 목뼈"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기를 맞이하고야 마는 인생.

이렇게 되기까지의 고단함과 수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터,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도 그러셨다. "고개 들어 먼 산을 보며 잠시 쉬어갈 뿐/몸이 쇳소리에 끌려다니고/가슴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도"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망가진 뒤에야 비로소 느끼는 어머니 마음은 "목이 한쪽으로 쳐질 때까지"라도 자식을 위하는 것이었으니, 그것을 어찌 고집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어머니 얼굴 또한 주근깨와 기미가 가득했으니 그것을 어찌 보기에 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생명을 품고 있는 "해바라기 씨가 빼곡히 익었다"라고 비유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쭈글쭈글한 이마"에는 "바람이 지나간" 주름이 어머니가 걸어온 길보다 깊게 패어 있다. 늘그막에 어찌어찌해서 "핀을 박아 고정한 목"으로도 "아들의 꽁무늬만 좆느라 몸을 자꾸 들썩거"리다 "앓아누우신/어머니 몸에서 바람 소리가 난다." 자식에게 "바람을 먹여서 키"우기 위해 당신의 뼈에 온통 바람길을 만들어야 했던 어머니.

바람은 습기를 제거하고 물기를 말리는데, 어머니가 내는 바람은 오히려 물기를 만든다. 가슴 깊이 들어차는 바람, 눈을 촉촉하게 적시는 물기. 그런데 이상하다. 하나도 눅눅하지 않고 습하지도 않다. 오히려 쾌적하다. 뒤늦게 깨달은 어머니 바람. 정결하고 고장이 없다. 순도와 기능이 최고요, 평생을 간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이종섶 mybach@naver.com

<저작권자 © 부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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