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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23] '점핑의 계절'

기사승인 2019.08.19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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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젖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 ⓒ부천타임즈

점핑의 계절
임향자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 분수의 계절

놀이터로 변한 중앙공원이 소란하다
화강암이 깔린 인도를 마주보고 선 점핑분수
시차를 두고 물줄기를 뿜어 올린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다 곡선으로 내려온다
허공이 물길을 만들어 터널을 세우는 찰나
아이들이 재빠르게 통과한다

때를 놓치면 예고 없이 물의 터널은 일어서고
아이들은 다시 분수 속으로 뛰어들 준비한다
옷이 축축해질수록 아이들 웃음소리가 높아진다
물의 깃털이 뛰어 올라 만나는 햇빛방울
분수터널에서는 밖의 세상도 환하다

물을 피해 통과하는 것은 즐거운 놀이
하지만 아이들은 곧 물에 젖는다
젖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나도 이 터널을 건너려고 젖을 각오로 뛰어든다

   
▲ ⓒ부천타임즈

여름은 "분수의 계절"이다. 분수는 형태를 막론하고 보기만 해도 그 자체로 시원하지만, 솟구치는 물과 함께 뛰어놀 수 있게 만들어놓은 분수는 노는 아이들이나 구경하는 어른들 모두 시원함과 더불어 즐거움까지 안겨준다.

바닥에서 물줄기가 솟아나는 "점핑분수"는 "시차를 두고 물줄기를 뿜어 올"렸다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다 곡선으로 내려온다." 물줄기의 "터널을 세우는 찰나"에 "아이들이 재빠르게 통과한다." 타이밍을 놓칠 때도 있어서 "때를 놓치면 예고 없이 물의 터널은 일어서고/아이들은 다시 분수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옷이 젖는 것은 당연해서 "옷이 축축해질수록 아이들 웃음소리가 높아진다." 그렇게 신나게 뛰어노는 "분수터널에서는 밖의 세상도 환하"게 보인다.

점핑분수나 분수터널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바로 그 물줄기에 옷을 적시지는 않는다. 옷이 젖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하고 뛰면서 서서히 젖어가는 것이다. "물을 피해 통과하는 것은 즐거운 놀이"지만 "아이들은 곧 물에 젖"고 마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발견한다. 점핑분수라는 놀이와, 젖지 않으려는 시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젖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 젖음이 즐겁고 또 그 젖음을 즐거워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점핑분수에서 물과 함께 뛰어놀 때 이 같은 내용을 인지할 리는 없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도 같은 깨달음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젖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젖지 않고" 살 수 있는 인생도 없다. 다만 그 젖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길과 인생의 성격이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젖음을 즐거워하지는 못해도 그 젖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마음이 젖을 때 그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 젖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진정 자신이 젖지 않는다는 역설을 기꺼이 깨달으며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젖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나도 이 터널을 건너려고 젖을 각오로 뛰어든다

시의 마지막 두 행의 울림이 크다. 바닥에서 솟아나는 점핑분수의 물줄기처럼 이 두 행이 솟아나 뻗어간다. 몸은 젖어도 마음은 젖지 않는다. 마음이 젖지 않기 위해 몸이 젖는 것을 허용한다. 몸을 먼저 적셔 마음을 보호한다. 젖은 몸으로 마음을 살린다.

땀이 흐르면 마음이 개운해지듯 몸이 젖으면 삶도 "즐거운 놀이"가 된다. 인생은 몸과 마음이 다 젖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놀이터가 되어주지 않는다. 몸은 젖되 마음은 젖지 않는 사람에게, 아니 몸을 젖게 해서 마음을 젖게 하지 않는 사람에게 "세상도 환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마음이 젖으면 세상이 어두워도, 마음이 젖지 않으면 세상이 환하다. 오늘을 사는 잠언이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이종섶 my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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