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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과 고바우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했다"

기사승인 2019.09.09  11: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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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만화계의 별...김성환 화백 87세 숙환으로 별세

   
▲ 경기도 부천 한국만화박물관에 설치된 김성환 화백의 핸드프린팅 ⓒ부천타임즈 양주승 기자

[부천타임즈:양주승 대표기자] 한국만화를 대표하는 김성환 선생(1932년10월8일생)이 2019년 9월 8일 향년 87세 숙환으로 별세했다.

김성환 선생은 <고바우 영감>으로 인기를 얻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시사만화 작가이며 동시에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독자에게 사랑받는 이야기 만화 작가이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만화를 기초부터 쌓아올린 장본인으로 시사만화, 이야기 만화 모두 활발하게 활동했다.

고인과 부천시와의 인연은 한국만화박물관에는 김성환 선생의 핸드프린팅이, 도당동 북부시립도서관 앞에는 고바우 영감 미니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한때 부천시에서는  보행자 신호등 캐릭터를 고바우로 바꿔 만화도시 부천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도 했으나 법규정에 막혀 무산되기도 한 일화가 있다.

(사)한국만화가협회 윤태호 회장은 "김성환 선생님은 한국만화의 큰 어른이었다. 특히 고바우 만화상을 통해 후배 만화가들을 격려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고바우 영감>을 더 이상 신문에서 볼 수 없을 때도 안타까웠지만, 이제 선생님도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더 아쉽다."며 한국만화의 큰 어른 김성환 선생을 추모했다.

박석환 한국영상대학 교수는 <한국현대만화의출발점 만화가 김성환>의 기고문에서 "김성환과 고바우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했다. 유신독재와 군사정권 하에 잃어버렸던 풍자와 비판의 정신을 살아남게 했다"면서 "사람들은 그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의 웃음을 짓기도 했고, 그가 싸워주는 것에 대해 위안의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사이 김성환은 각종 필화 사건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 검열에 의한 삭제와 정정은 수백 차례였고, 즉결재판과 벌금형에서부터 괴청년들의 미행, 정보부 요원들에 의한 취조, 이민이나 가라는 공갈 협박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1963년 AP통신이 '말을 함부로 못하게 된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군사정부의 언론탄압 소식과 함께 고바우 만화를 소개한 후로는 그 강도가 더욱 심해졌다."

"1973년 산케이신문은 고바우가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는 소식을 토픽으로 전하기도 했고, 이후 '고바우 영감은 살아있다'는 기사를 통해 김성환의 건재를 알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성환이 중앙정보부에 불려갔을 때는 세계의 외신기자들이 김성환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김성환은 그렇게 14,139건의 사건사고를 소재로 고바우라는 만화를 그렸다. '독재라거나 민주주의의 제한이라거나 하는 것이 싫을 뿐'이라는 이유로 누구보다 용감하게 오늘의 우리 사회를 만들어 냈다."

   
생전의 김성환 화백출처 '한국만화영상진흥원/네이버캐스트'

고인은  한국현대만화의 출발점이라는 평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1997년 한국만화문화상, 2002년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고바우 영감>의 원고가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에 등재되기도 했다.

김성환 선생은 1932년 10월 8일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이주했고, 돈화국민우급학교,길림6고를 다녔다.

해방 이후 서울로 이주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게 되었다. 경복고에 입학한 김성환 선생은 미술반 활동을 하며 신문에 실린 김규택(1906-1962), 김용환(1912-1998) 선생의 만화 등을 보며 만화를 익히기도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일제에 의해 폐간된 신문, 잡지들이 복간되거나 창간되었다. 김성환 선생은 1949년 해방 후 창간된 «연합신문»에 네 칸 만화 <멍텅구리>로 데뷔했다. <고바우 영감>이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한국의 대표적인 만화이자 만화 캐릭터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일간 신문에 연재되면서부터다. 1955년 2월 1일자 «동아일보» 연재를 시작으로 1963년까지는 외부 기고형태로 작품을 발표했고, 1964년에는 신문사에 입사해 <고바우 영감> 연재를 이어갔다.

최장수 연재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
 
1980년 8월 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뒤 1980년 9월 11일부터 1992년 9월까지 «조선일보», 1992년 10월부터 2000년10월까지는 «문화일보»에 <고바우 영감>을 연재했다. 이렇게 연재한 <고바우 영감>은 총 14,139회를 연재하여 한국 최장수 연재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고바우 영감>의 국내 최장기 연재 기록이 의미하듯 한국 시사만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굴곡 많은 한국현대사의 사건사건마다 권력자의 편이 아니라 서민의 편에서 시대를 기록하고, 풍자했다. 김성환 선생은 만화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경무대 똥 치우기 만화' 로 벌금형, 중앙정보부와 검찰에 끌려가기도

1957년 야당의원의 7.27 데모사건을 다룬 잡지만화로 벌금형을 받고, 1958년 1월 23일 <고바우영감>의 '경무대 똥 치우기 만화' 로 벌금형을 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무대 똥 치우기 만화' 사건 때는 서울시경 사찰과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중앙정보부에 2번, 검찰에 2번 끌려갔고 심지어 5일 동안 붙잡혀있기도 했다.전두환 정권에서는 검열에 걸려 하루에 네다섯 번을 고쳐 그릴 때도 많았다. 하지만 연재하는 내내 어떤 위협에도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풍자의 칼을 벼리며 만화를 그렸다.

<고바우 영감>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사만화이며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였다. 시사만화이면서도 캐릭터를 활용해 1958년 조정호 감독이 김승호, 김희갑, 노경희가 출연한 영화 <고바우>로 제작하기도 했다.

   
▲ 고바우 우표

반세기 동안 시사만화 작가로 활동한 작가답게 동아 대상, 소파상, 서울언론인클럽 신문만화가상, 언론학회 언론상, 한국만화문화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고바우 만화상'을 제정, 한국만화계에 기여한 만화가들에게 상을 수상했다. 김성환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해 '시사만화가'로 기억되지만 시사만화와 함께 다양한 우스개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본 글은 한국만화가협회의 김성환 선생 추모글과 박석환 교수의 기고문을 바탕으로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양주승 기자 webmaster@bucheontimes.com

<저작권자 © 부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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