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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26] '한 사람'

기사승인 2019.09.09  1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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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나해철


한 사람을 만나고 싶네
마음에 사랑이 샘솟고
눈이 맑은 그 사람
지칠 줄 모르고 타오르는 정열
세월 갈수록 굳어지는 신념
언제나 아름다운 그 사람
들판에 서면 농군으로
공장에서 땀흘리면 일꾼으로
겨레를 위해서만 헌신하는
형제들을 그리며 몸 살으르는
귀하고 소중한 사람
땅 위에 소롯한 한 송이 꽃처럼
하늘에 초롱한 한 떨기 별처럼
무더기 속에선 외지게 피었지만
어둔 밤이면 또렷이 보이는 그 사람
부드러운 손도 가슴도
이미 뜨거운 강철로 달구어져
땅 위에선 부서지지 않는 그 사람
고통 속에서도 눈부시게 웃으며
어서 가자 앞서 걸으며 눈빛 빛내고
어서 오라 새벽을 부르는
그 미소 그 목청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네.


나해철 시인의 시집 『동해일기』에 실려있는 「한 사람」을 읽었을 때가 1980년대 후반이었으니, 그때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난 셈인데도 이 시를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은 이 시가 내 가슴속에서 곱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시를 불러낸 것이 아니라 이 시가 나를 불러냈다고 해도 될까. 어려운 표현 하나 없이 이해하기 쉬운 말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써 내려간 시 한 편 속에는 진득하게 곱씹어볼 것들이 들어있다.
우선, 감성과 신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감성만 있으면 금방 질리기가 쉽고 신념만 있으면 딱딱해서 접근하고 싶지가 않은데, 그 감성과 신념을 적절하게 잘 버무려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열정과 부드러움도 함께 섞여 있다. 열정만 있으면 자칫 그 열정이 주변을 피곤하게 할 수도 있고 부드러움만 있으면 그 부드러움만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텐데, 이렇게 열정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성정으로써 진행과 성취의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거울처럼 반성문처럼 다시 꺼내 읽어보는 「한 사람」 앞에서, 그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과 그 마음처럼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동시에 경험한다. 더불어, 다시금 이 시에 나오는 "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그러나 결연하게 스며든다. 이 시의 힘이다.
"마음에 사랑이 샘솟"는 "눈이 맑은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어떻게 단장하며 꾸려가야 할지가 분명하게 떠오른다. "무더기 속에선 외지게 피었지만/어둔 밤이면 또렷이 보이는 그 사람" 앞에서 다시금 결심한다. 어두울 때 그 사람의 됨됨이가 나타나는 법이니 "어둔 밤"에 "또렷이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이제, "손도 가슴도” 모두 “뜨거운 강철로 달구어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고통 속에서도 눈부시게 웃"을 줄 아는 사람, 빛나는 눈빛으로 "앞서 걸으며" "새벽을 부르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이 시의 힘이다. 이 시의 기운을 받으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이종섶 mybach@naver.com

<저작권자 © 부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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