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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30]'다시 벗에게 부탁함'

기사승인 2019.10.07  14: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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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도 써도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은 늘 들어있는...

   

   
▲ ⓒ부천타임즈

다시 벗에게 부탁함
   정호승

 

   벗이여
   소가 가죽을 남겨 쇠가죽 구두를 만들듯
   내가 죽으면 내 가죽으로 구두 한 켤레 만들어
   어느 가난한 아버지가 평생 걸어가고 싶었으나
   두려워 갈 수 없었던 길을 걸어가게 해다오
   벗이여
   내 가죽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으로 가죽 소파 하나 만들어
   저녁마다 독거노인이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보다가 울다가 웃다가 잠들게 해다오
   그리하여 벗이여
   내게 아직도 부드럽고 따뜻한 가죽이 남아 있다면
   가죽장갑도 한 켤레 만들어
   외로운 골목
   추워 떠는 노숙의 손들이 낄 수 있는 장갑이 되게 하고
   그러고도 내게 아직 가죽이 남아 있다면
   별빛을 조금 섞어
   써도 써도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은 늘 들어있는
   가죽지갑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마다 빛나게 해다오

 

   이런 시 앞에서 어느 누군들 감동의 마음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이런 부탁 앞에서 어느 누군들 "가난한 아버지"와 "독거노인"과 "노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의 삶에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들에게 "길을 걸어가게 해"주고 "잠들게 해"주고 "장갑이 되게" 해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마다 빛나게 해"주는 것이다. 나의 가슴에 눈물이 있다면 이들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방황하고 반성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가? 내가 사는 목적과 행위와 누림이 이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벼랑 끝으로 치닫는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2019 제1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이종섶 mybach@naver.com

<저작권자 © 부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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