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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60] 수원에서 부천 오는 마지막 버스

기사승인 2020.05.04  13: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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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타임즈

마지막 버스에서
허윤설


수원에서 부천 오는 마지막 버스
터미널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의 고개가 스르르 내 어깨에 넘어져
밀어내기 몇 번 해도 제자리다

십 년 넘게 이 길을 출퇴근했던
남편 생각에 얌전하게 어깨를 내주자
한 남자 삶의 무게가 전해진다
가장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했으면
낯선 여자 어깨에서 세상모른 채 단잠을 잘까
움켜잡은 빵 봉지 놓치지 않는 집념
날마다 저렇게 하루를 붙잡았을 것이다

코까지 골던 남자 터미널 다가오자
벌떡 일어나 도리질로 잠을 털고
나는 어깨의 가벼움을 느끼며
자는 척 두 눈을 살짝 감았다

   
▲ ⓒ부천타임즈

"수원에서 부천 오는 마지막 버스"입니다. 수원에서 서울도 아니고, 부천에서 서울도 아닌 "수원에서 부천"을 오가는 버스네요. 그것도 "마지막 버스"구요. 버스 노선과 시간이 그 자체로 고단함을 자아냅니다.

"마지막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르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다 차지 않아 어둠이나 공허함이 한 자리씩 앉아가는 풍경입니다. "터미널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옆자리에 앉은 "남자의 고개가 스르르 내 어깨에 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하다 못해 귀찮고 번거롭기까지 해서 "남자의 고개가" 넘어져 머리가 닿을 때마다 "밀어내기 몇 번"을 하는데도 도무지 소용이 없습니다. 해도 "해도 제자리"입니다.

이 시에서 "나"로 나오는 사람은 여성이요, 한 남자의 아내인데요. "십 년 넘게 이 길을 출퇴근했던/남편"은 직장 때문에 그랬을 테지만, 아내는 무슨 일로 "수원에서 부천"을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탔을까요. 수원에 늙은 부모님이 계시는 친정이 있을까요? 아니면 어떤 형편으로 인해 수원에서 남편이 하던 일을 대신 하게 된 것일까요?

아내의 상황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십 년 넘게 이 길을 출퇴근했던/남편 생각에 얌전하게 어깨를 내주"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때 "한 남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전해"졌습니다. "가장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했으면/낯선 여자 어깨에서 세상모른 채 단잠을 잘까"요.

집에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을, 또는 아빠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을 아이들에게 줄 "빵 봉지"를 "움켜잡은" 손은 졸지도 않나 봅니다. "놓치지 않는 집념"을 보니 어린 자식들을 쓰다듬던 손이라서 본능적으로 움켜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능적인 집념으로 "날마다 저렇게 하루를 붙잡았을 것"입니다.

음악 분야에서 기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말이 있습니다. 악기 연습을 손가락에서 피가 날 정도로 열심히 하면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도중에 긴장을 하거나 떨려서 집중력이 저하가 되어도 손이 기억을 하고 있어서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말인데요. 저 남자의 손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수고로웠던 하루의 끝자락이 너무 고단한 나머지 졸음 때문에 머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지라도,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자주 연습하고 훈련했던 손이 지금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 겁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이라면, 그래서 어쩌다 사서 잡고 있는 빵 봉지라면 아마도 졸음이 깊어진 순간 손이 풀어지고 빵 봉지도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움켜잡은 빵 봉지 놓치지 않는" 손이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남자는 얼마나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다가 "터미널 다가오자/벌떡 일어나 도리질로 잠을"텁니다. 얼마나 혼곤하게 졸았으면 고개를 흔들면서 잠을 털어냈을까요. 그로 인해 "어깨의 가벼움을 느끼"는 순간 그 남자에게 무안함을 주지 않으려고 "자는 척 두 눈을 살짝 감"은 "나"의 마음과 자세가 참으로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버스 안에서 나란히 앉은 "한 남자"를 통해 이 시의 화자인 아내는 남편의 모습과 삶을 보게 되었는데요. 실제로 남편을 보았다고 해도 될 만큼, 아니 영화적으로 표현하면 남편이 앉은 자리에 아내가 앉아서 남편을 보게 되는 또는 그 반대의 경우로 처리할 수도 있는 장면이네요.

   
▲ ⓒ부천타임즈

가정의 달인 5월입니다. 우리 가정에 이런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 남편을 이해하게 되는 아내가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런 사랑이 깃들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혹여 그런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손"으로 잡고 주는 일에 익숙하게 되기를, 그렇게 연습해가기를 바랄게요. 남편의 졸음과 같은 사소한 일에 면박이나 잔소리로 응대하기보다는 "어깨"를 빌려주면서 모른 척하기를 바랄게요. 사랑은 "손"으로 수고하는 것이며 "어깨"를 빌려주는 것이니까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이종섶 mybaha@naver.com

<저작권자 © 부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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