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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67]기다림에 대하여

기사승인 2020.06.22  16: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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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기린-해바라기 ⓒ부천타임즈

기다림에 대하여
박수서

해바라기 씨앗을 심은 지 스무날이 지나서도 낌새가 없기에
체념하고 화분의 흙을 파 꽃기린 두 개를 심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뭐가 나오는 거야
콩나물처럼 떡잎 두 개가 아, 입 벌리고 초록초록 웃는 거야
어찌나 귀엽던지 후, 불어줬더니 꾸벅 인사하대
그냥 나뒀으면 조금 더 기다렸다면
제집 제자리에서 당당하게 컸을 것을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나의 성급함이
집을 허물고 땅을 빼앗고 낯선 이주자를 불러들였으니
나도 그렇지만, 멀대처럼 우쑥 서 있는 꽃기린은 또 얼마나
미안하겠어
꽃도 고개를 숙이고 가시도 숨기려 안간힘을 쓰잖아
그래 어쩌겠니, 좁더라도 형제처럼 살아야지
콩나물시루에 형제들은 서로 옴짝달싹 못해도 잘만 살아가잖아

   
▲ 해바라기 ⓒ부천타임즈

화분에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습니다. 일주일이면 싹이 나오겠지 싶었는데 소식이 전혀 없습니다. 너무 성급했나 싶어 열흘이면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여전히 감감무소식입니다. 보름이면 충분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기다려도 끝내 싹이 나오지 않습니다. 설레는 마음은 사라지고 답답한 마음만 가득한 채로 "스무날"을 기다리는데도 도무지 싹이 틀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답답함도 자포자기 심정도 완전히 사라져버려 이제는 완전히 단념을 합니다. 씨앗에 문제가 있다고, 죽은 씨앗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스무날이 지나서도 낌새가" 없자 깨끗하게 "체념하고 화분의 흙을 파 꽃기린 두 개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고 일어났더니 뭐가 나오는" 겁니다. "콩나물처럼 떡잎 두 개가 아, 입 벌리고 초록초록 웃는" 겁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후, 불어줬더니 꾸벅 인사"를 합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차오릅니다. "그냥 나뒀으면" 되는데요. "조금 더 기다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으면 "제집 제자리에서 당당하게 컸을" 텐데 이렇게 제집이면서도 제집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게 되었네요.

이게 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나의 성급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내 성미가 너무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그냥 편안하게 기다리면 되었을 텐데요. 통통한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으면 믿고 기다리면 되었을 텐데요. 그도 저도 아니면 씨앗 발아에 관한 지식 검색이라도 해서 따뜻한 곳으로 화분을 옮겨 주면 조금이라도 빨리 싹이 났을 텐데요.

기다리지 못하는 "나의 성급함"이 화를 불렀네요. 해바라기 싹과 꽃기린이 크지도 않은 화분에서 함께 동거해야 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정말이지 "집을 허물고 땅을 빼앗고 낯선 이주자를 불러들"인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애써 집과 땅을 주었으면서 다시 그 집과 땅을 빼앗아버렸으니 심보가 참 고약해 보입니다.

   
▲ 꽃기린

"멀대처럼 우쑥 서 있는 꽃기린은 또 얼마나/미안"할까요. 자기 집인 줄 알고 왔는데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졸지에 남의 집을 빼앗은 꼴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속담의 당사자가 된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할 것입니다. 오늘따라 자기 키가 왜 이렇게 클까 싶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키라도 작으면 그나마 덜 창피할 텐데요.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미안한 마음을 달래보는데, 이번에는 뾰족한 가시들이 더욱 뾰족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기 꽃을 보호하려고 가시를 달았는데, 그 가시로 저 고운 싹을 찌르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그 가시를 “숨기려 안간힘을” 다하는데도 도무지 가시가 숨겨지지 않아 꽃기린의 마음만 다치게 생겼습니다.

정말이지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나의 성급함이" 해바라기 싹과 꽃기린 모두에게 상처를 주게 생겼습니다. 할 수 없이 "그래 어쩌겠니, 좁더라도 형제처럼 살아야지"라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해보는데, 졸지에 그 둘을 형제로 만들어준 나 자신이 민망하기만 합니다. "콩나물시루에 형제들은 서로 옴짝달싹 못해도 잘만 살아"간다고 말해주는 것이 왠지 궁색한 변명처럼 느껴지기만 합니다.

이게 다 "기다림"을 배우지 못한 "성급함" 때문인데요. 아, 나는 언제쯤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이 될까요. 내 기대대로 되지 않아도 기다리면 되는데,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기다리면 되는데, 이 나이 먹도록 아직 그걸 못하고 있네요. 참 큰일입니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이종섶 mybaha@naver.com

<저작권자 © 부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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