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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80] '나의 거룩'

기사승인 2020.09.21  13: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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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타임즈

나의 거룩
문성해

이 다섯 평의 방 안에서 콧바람을 일으키며
갈비뼈를 긁어대며 자는 어린것들을 보니
생활이 내게로 와서 벽을 이루고
지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조금은 대견해 보인다
태풍 때면 유리창을 다 쏟아낼 듯 흔들리는 어수룩한 허공에
창문을 내고 변기를 들이고
방속으로 쐐애 쐐애 흘려 넣을 형광등 빛이 있다는 것과
아침이면 학교로 도서관으로 사마귀 새끼들처럼 대가리를 쳐들며 흩어졌다가
저녁이면 시든 배추처럼 되돌아오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도 거룩하다
내 몸이 자꾸만 왜소해지는 대신
어린 몸이 둥싯둥싯 부푸는 것과
바닥날 듯 바닥날 듯
되살아나는 통장잔고도 신기하다
몇 달씩이나 남의 책을 뻔뻔스레 빌릴 수 있는 시립도서관과
두 마리에 칠천원 하는 세네갈 갈치를 구입할 수 있는
오렌지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과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세탁집 여자의 목소리가
이제는 유행가로 들리는 것도 신기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닦달하던 생활이
옆구리에 낀 거룩을 도시락처럼 내미는 오늘
소독 안 하냐고 벌컥 뛰쳐 들어오는 여자의 목소리조차
참으로 거룩하다

   
▲ ⓒ부천타임즈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천타임즈 시장바구니가 월요일에 연재되므로 추석 전에 월요일이 다음 주에 한 번 더 남아 있지만, 그때는 조금 촉박한 듯하여 사실은 좀 미리 생각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오늘이라는 월요일을 택해 문성해 시인의 「나의 거룩」을 시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보다 한 주 앞선 월요일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의도한 내용을 넉넉하게 앞서 펼치면 좋겠다는 뜻이구요. 의도하는 내용의 성격조차도 예방 차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예방주사도 적절한 시기에 맞아야 효과적이니까요.

추석 명절이 찾아오면 여러 가지로 좋은 일들이 많지만 반대로 불편한 일들도 있고 나아가 마음이 힘들어지는 일도 생깁니다. 그중에 하나가 형제나 일가친척들이 나보다 넉넉하고 잘살고 있는 일로 인해 비교에서 오는 또는 암암리에 비교되어지는 일입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별 것 아닌 듯 지나왔는데 마치 불에 데인 화상처럼 조금씩 조금씩 부풀어오르다가 짓무르고는 합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이기기 위해, 또는 그런 마음이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들어왔다가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건강한 생각으로 인해 바로 사라져버리게 되는, 그런 약발 좋은 백신 하나 예방 차원에서 소개해드립니다. 남보다 많이 가지지 못해서 기죽거나 상처받을 이유가 없는 마음, 남보다 더 가졌다고 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은연중에 남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는 그런 명절의 며칠을 준비하기 위해서요.

「나의 거룩」은 제목과 시에 나오는 "거룩"이 핵심입니다. 이 "거룩"은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는 기둥과 같아서 "거룩"으로 인해 시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풍성한 누림이 펼쳐집니다. 평범한 일상에 "거룩"이 기분 좋은 반전처럼 작용합니다.

그것은 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일로 출발합니다. "다섯 평의 방 안에서 콧바람을 일으키며/갈비뼈를 긁어대며 자는 어린것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생활이 내게로 와서 벽을 이루고/지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조금은 대견해 보"이는 마음을 품습니다.

그 "어린것들"이 자고 있는 집은 "태풍 때면 유리창을 다 쏟아낼 듯 흔들리는 어수룩한 허공에/창문을 내고 변기를 들이고/방속으로 쐐애 쐐애 흘려 넣을 형광등 빛이 있"는 정도입니다. 그 집에서 "아침이면 학교로 도서관으로 사마귀 새끼들처럼 대가리를 쳐들며 흩어졌다가/저녁이면 시든 배추처럼 되돌아오는 식구들이"살아갑니다.

"어린것들"과 "식구들을" 챙겨야하는 "내 몸이 자꾸만 왜소해지는 대신/어린 몸이 둥싯둥싯 부푸는 것과/바닥날 듯 바닥날 듯/되살아나는 통장잔고도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런 마음이 있기에 "몇 달씩이나 남의 책을 뻔뻔스레 빌릴 수 있는 시립도서관과/두 마리에 칠천원 하는 세네갈 갈치를 구입할 수 있는/오렌지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과/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세탁집 여자의 목소리가/이제는 유행가로 들리는 것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 ⓒ부천타임즈

"하루가 멀다 하고 닦달하던 생활이/옆구리에 낀 거룩을 도시락처럼 내미는 오늘"은 "소독 안 하냐고 벌컥 뛰쳐 들어오는 여자의 목소리조차/참으로 거룩하"게 느껴지는 날입니다.시가 산뜻한 청량감으로 가득해 한달음에 읽었는데요.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을 따듯하고 포근하게 만드는 시입니다. 지쳤던 마음이 다시 살아나게 위로해주는 시입니다. 가라앉은 마음에 생동감을 가득 불어넣어 주는 시입니다.

"거룩"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고 나오네요. 그렇다면 문성해 시인이 말하는 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저 지극히 평균적인 생활의 반경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고 말해도 되겠습니다. 이것이 이 시의 신비이자 특별한 맛이니까요.

이런 마음과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흔들렸다가도 이내 다시 제자리를 잡고 중심을 잡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흔들지도 않고 흔들리게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부천타임즈

추석이 다음 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마음을 선물로 준비해보면 어떨까요? 나에게 주는 선물,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주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은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귀로는 들을 수 있습니다. "대견해보인다", "거룩하다","신기하다","참으로 거룩하다"와 같은 말을 통해서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어나 목적어를 잘 붙여야 합니다. 주체나 목적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많은 것과 뛰어난 것을 그렇게 말하면 그것은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주는 것이니까요. 없어도, 부족해도, 불편해도, 남보다 보잘것없어도, 이 시의 서술어처럼 말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선물을 넘어 거룩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거룩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습니다. 거룩은 뛰어나지 않고 평범합니다. 거룩은 위대한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입니다. 거룩은 특별한 생활에서 나오지 않고 일상에서 나옵니다.이번 추석에 이런 선물 한번 해보세요. 수고 많은 당신에게 먼저, 그리고 가족과 친지들에게요.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이종섶 myba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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