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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81] 사과 배꼽

기사승인 2020.09.28  17: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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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타임즈

사과 배꼽
이숨


사과나무 가지에 맺힌
꽃을 솎아내는 어머니

생과 사는 어머니의 손에 달렸다

일손이 모자라 제때 따지 못한
사과는 벌레의 먹이
딸은 윗목에 밀치고
아들에게만 젖을 물렸던 어머니
사과나무에서 꽃을 딸 때 조심스럽다

너를 공부시켜야 했었는데
미안하다

사과씨처럼 단단해진 딸과 어머니는
더불어 산다

   
▲ ⓒ부천타임즈


사과꽃처럼 산뜻하고 예쁘지만 그속에는 아픈 향이 간직되어 있는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이숨 시인의 「사과 배꼽」입니다.

어머니는 해마다 봄이 오면 "사과나무 가지에 맺힌/꽃을 솎아"냈습니다. 사과꽃들의 "생과 사는 어머니의 손에 달렸"던 것인데요. 사과가 열려 굵어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손이 모자라 제때 따지 못한/사과는 벌레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멀쩡한 꽃이지만 튼실한 사과를 얻기 위해 꽃을 속아내고, 그렇게 해서 열린 사과지만 제때 따지 못해 벌레가 먹게 되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일에도 그대로 나타나나 봅니다. 어머니는 "딸은 윗목에 밀치고/아들에게만 젖을 물렸"었는데요. 그런 일로 인해 어머니는 "사과나무에서 꽃을 딸 때 조심스럽"습니다. 꽃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야 하는 것처럼 당연히 자식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딸을 밀치고 아들을 품었던 것이지요.

   
▲ ⓒ부천타임즈

사과꽃이야 한번 따면 그만이지만 아들을 품고 딸을 밀쳐내는 일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져서, 아들만 공부를 시키고 딸은 공부를 시키지 않은 것인데요. 어머니는 멀쩡한 사과꽃을 따는 아픔 그 이상으로 딸에 대한 아픔이 커서, 딸이 장성한 뒤에야 아픔으로 절절하게 피워낸 꽃 같은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너를 공부시켜야 했었는데/미안하다"라구요.

평생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던 말, 그 말에 어머니 가슴이 베이고 또 베이며 시뻘건 꽃물이 들었을 가슴에서, 이제는 더 이상 고일 수도 없고 쟁일 수도 없어 저절로 흘러나오고 터져나온 붉은 눈물의 아픈 고백입니다.

장성한 딸은 어미가 되어서야 어미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어미의 아픔을 어미의 처지가 되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너를 공부시켜야 했었는데/미안하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울컥, 그동안 쌓였던 묵은 감정이 켜켜이 풀렸던 것일까요. "사과씨처럼 단단해진 딸과 어머니"가 "더불어" 사는 결말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합니다.

   
▲ ⓒ부천타임즈

딸의 가슴에 오래도록 맺혀서 피어나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향기조차 없었던 그 모진 꽃을 이제야 따준 어머니가 야속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따준 어머니가 고맙기만 해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어머니 역시도 공부대신 일만 시켰던 딸이 바닥에 떨어지지도 않고 벌레 먹지도 않은 채로 잘 견뎌주면서 살아준 것이 너무 고맙기만 합니다. 감히 '대견하게 컸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하고 또 미안하기만 해서 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을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그 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눈물을 닦아주는 날이 마침내 왔습니다.

가난해서 그랬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변명하기에는 그 아픔이 너무 커서, 시집간 딸이 생일이나 명절에 찾아올 때마다 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세월이었습니다. 얼굴을 본다고 해도 마음으로는 눈을 질끈 감고 보아야 했던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가 딸에게 마음을 열고 딸의 마음에 손을 내밀어 딸의 마음 "가지에 맺힌/꽃을 솎아내"었네요. 그러면서 어머니 마음 "가지에/맺힌 꽃을 솎아"낸 것이구요.

   
▲ ⓒ부천타임즈

사과꽃을 솎아내는 어머니의 마지막 작업이 드디어 완성이 되고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서, 이번 추석 명절에는 딸을 밝은 얼굴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미 마음에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 시인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이종섶(시인,평론가)은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부천타임즈 <이종섶의 詩장바구니> 연재중

 

이종섶 mybaha.naver.com

<저작권자 © 부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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