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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63] 울돌목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 떼"

기사승인 2020.05.26  06: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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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타임즈

숭어
오성인

사월,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 떼
여차하면 난파당할지도 모르는데

죽음을 건너 기어이
생에 닿으려는 저
몸부림

앙숙의 눈에 띄는 일이 두려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짐승처럼
변방을 떠돌기 급급했던
날들이 있었다

저 숭어 떼와 같이 필사적으로
운명의 소용돌이를 정면돌파한다면
황무지와 다름없는 심장에 다시
풀은 돋을까 텅 빈 객석이 채워지고
그리하여 멀어진 인연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

웬만한 시련은 기꺼이
무릅쓰는 숭어

죽을힘을 다해 보지 않고서
내가 있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 ⓒ부천타임즈

전라남도 진도와 해남반도 사이에는 병목현상처럼 좁아지는 해로가 있습니다. 바로 울돌목입니다. 바닷물의 간조와 만조를 거치는 동안 울돌목의 조류는 소리까지 크면서 매우 거칠고 거세기로 유명합니다.

그 울돌목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 떼"가 있습니다. "여차하면 난파당할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을 건너 기어이/생에 닿으려는" 숭어들의 "몸부림"이 눈에 보이면서 그 긴장감까지 그대로 느껴집니다.

숭어가 지나가야 하는 울돌목이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울돌목을 지나가야 하는 날들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앙숙의 눈에 띄는 일이 두려워/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짐승처럼/변방을 떠돌기 급급했던/날들"입니다.

나만 조심하면 되는 그런 일들, 내가 다시 힘을 내면 되는 그런 일들은 그 어려움이 그다지 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다른 사람과 관계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관계가 "앙숙"의 관계로까지 진행되었을 때는,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에 그 괴로움이 참으로 크다고 하겠습니다.

갈수록 조여오는 고통이, 그런 상황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과 자기 내면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말들이, 울돌목의 두려운 위세와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 좁고 거센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물속에 가라앉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울돌목을 돌파하는 숭어를 떠올립니다. "저 숭어 떼와 같이 필사적으로/운명의 소용돌이를 정면돌파한다면" 어떨까 하는 삶의 지혜처럼요. 그러면 "황무지와 다름없는 심장에 다시/풀은 돋"지 않을까요. "그리하여 멀어진 인연들에게" 다시 예전처럼 "닿을 수 있"지 않을까요.

숭어에게는 시련이 늘상 있나 봅니다. 그 시련을 회피하지 않고 그 시련을 감당하면서 그 시련을 끝내 이기는 숭어로 살아가나 봅니다. "웬만한 시련은 기꺼이/무릅쓰는 숭어"라고 해서요.

그래서 울돌목을 지나가는 숭어 떼를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물살을 가르는 숭어의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몸짓처럼, 전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지느러미처럼, 그렇게 힘을 내보기로 합니다.

그것은 "죽을힘을 다해 보지 않고서/내가 있을 자리는/어디에도 없다"는 결심인데요. 그러고 보면 "죽을힘을 다해" 본 것이 언제인가 싶게 기억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울돌목 저 너머에 있는 곳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채, 그렇게 어리석게 그리고 어리게만 살아온 것일까요. 울돌목이 찾아올 때마다 그곳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했을까요. 울돌목 주변에 주저앉아 불평만 늘어놓다 습관으로 굳어져 버렸을까요. 울돌목으로 밀어 넣은 사람 탓만 하면서 원망만 키우다 심성마저 딱딱해져 버렸을까요.

이제부터는 "시련은 기꺼이/무릅쓰"기로 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보"기로 합니다. 그곳을 지나야 "내가 있을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다가오는 생의 울돌목은 그 울돌목을 "웬만한 시련" 정도로 여기게 하는, 그런 넉넉한 자세를 가지게 해주리라 믿으니까요,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이종섶 mybaha@naver.com

<저작권자 © 부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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