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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섶의 詩장바구니-69] '가을 아욱국은 사립문 닫고 먹는다'

기사승인 2020.07.06  15: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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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욱꽃

아욱꽃
김나영

아욱꽃이 피어 있다
코끼리 귀같이 펄럭거리는 큰 잎사귀 틈에
코끼리 눈처럼 작은 아욱 꽃이 피어 있다
빛바랜 연보라빛 꽃이 향기도 없이 피어 있다

어느 벌이, 어느 나비가 저 꽃에 들겠는가
저 꽃도 꽃인데 왜 색을 버렸겠는가
세상에는 꽃을 위해 잎을 포기하는 꽃이 있고
잎을 위해 꽃을 포기하는 꽃이 있다
 
봐라! 식구들 밥해 멕이려고
수백 평 푸른 밭 경작하고 있는
저 장딴지를!

"아욱꽃이 피어 있"습니다. "코끼리 귀같이 펄럭거리는 큰 잎사귀 틈에"서 "코끼리 눈처럼 작은 아욱 꽃이 피어있"습니다. 아욱꽃을 코끼리 귀와 눈으로 비유를 하니 크기는 물론 그 느낌과 이미지까지 그대로 전해져옵니다. 그런 "빛바랜 연보라빛 꽃이 향기도 없이 피어 있"습니다.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향기까지 없으니 "어느 벌이, 어느 나비가 저 꽃에 들겠"습니까. 꽃의 색도 빛이 바랜 듯해서 눈길을 끌지 못하는데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저 꽃도 꽃인데 왜 색을 버렸겠"습니까. 향기도 없고 색도 좋지 않은 데에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겠지요.

"세상에는 꽃을 위해 잎을 포기하는 꽃이 있고/잎을 위해 꽃을 포기하는 꽃이 있다"는 말이 오늘따라 천둥처럼 무겁고 크게 들립니다. 그렇게 살아오지 못하다가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듯이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이 화려하면서 잎사귀까지 화려한 식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꽃이 화려하면 잎사귀는 평범하고, 잎사귀가 화려하면 꽃이 평범한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어머니나 아버지, 또는 나 자신에 대해서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요. "식구들 밥해 멕이려고/수백 평 푸른 밭 경작하고 있는/저 장딴지"의 주인공인 어머니에게,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눈총을 보내며 불만을 품지 않았을 텐데요.

그 중심에는 꽃이 되지 못해서 꽃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원망과 한탄이 섞여 있을 것입니다. 곱고 예쁜 꽃들을 보면서 부럽다 못해 평생 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딱하고 창피하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꽃을 버리고 잎사귀를 선택한 아욱을 살펴보면 실로 박수를 받을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통 채소는 여름 장마 전에 다 끝나면서 8월 중순 이후에 다시 파종을 하시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욱은 그 생명력이 정말 대단해서 한여름에도 손쉽게 재배할 수가 있습니다. 무더위를 정말 잘 견디는 것이지요.

   
▲ 아욱국

중국에서는 아욱이 오채로 꼽을 정도로 주목받는 식재료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을 아욱국은 사립문 닫고 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며, 특히 충청도에서는 '집 나간 며느리가 아욱국에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아욱처럼 살아온 인생 때문에 힘들진 않으신가요? 아니면 아욱처럼 일만 하며 살아온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와 남편을 무시한 것 때문에 후회스럽지는 않으신가요? 그런 당신 곁에 김나영 시인의 시 「아욱꽃」을 놓아드립니다.

꽃을 몰라서도 아니고 꽃이 없어서도 아니라 잎을 위해서 꽃을 포기한 생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잎을 위해서 작고 보잘 것 없이 피어난 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 시인 이종섶

이종섶(시인,평론가)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시집으로<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물결무늬 손뼈 화석>,<바람의 구문론>이 있다.'목일신아동문학상' 운영위원

이종섶 mybaha.naver.com

<저작권자 © 부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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